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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어주는 남자

노을 무렵 - 김지하

by tirol 2005. 1. 20.
노을 무렵

김지하


눈부신 흰 시루봉 저녁
어여쁜 분홍 노을
내 시린 이마에 타는 노을
행길 저기서
아이들과 함께 공받기 하는 내 속에
담배 피우며 신문 읽고 있는
내 속에 노을 무렵에
되똥거리는 빛나는 재잘거리는
닭, 참새, 붉은 구름, 사철나무 스쳐
지나는 바람, 머언 거리의 노랫소리
노랫소리 속에
나와 함께 공받기 하는 아이들 속에
눈부신 흰 시루봉 저녁
어여쁜 분홍 노을
내 시린 이마에 타는 노을
우리 집에 문득
불켜질 때 나는 다시 혼자다
오늘은 새벽까지 술을 마시자.


* tirol's thought

되지도 않는 시를 혼자 끄적거릴 때
내 시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 중에 하나가
'문득'이다.
잘 나가는 것 같다가, '문득'
아무 이상도 없는 것 같다가, '문득'
나는 왜 '문득'의 순간에 집착하는 것일까.

'우리 집에 문득
불켜질 때 나는 다시 혼자다
오늘은 새벽까지 술을 마시자'


문득 깨닫는 시인의 외로움을 알 것도 같다.

어제는 새벽까지 술을 마셨다.
외로와서 마신 건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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