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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어주는 남자

낯선 곳 - 고은

by tirol 2005. 4. 29.
낯선 곳

고은


떠나라
낯선 곳으로

아메리카가 아니라
인도네시아가 아니라
그대 하루하루의 반복으로부터
단 한번도 용서할 수 없는 습관으로부터
그대 떠나라

아기가 만들어낸 말의 새로움으로
할머니를 알루빠라고 하는 새로움으로
그리하여
할머니조차
새로움이 되는 곳
그 낯선 곳으로

떠나라
그대 온갖 추억과 사전을 버리고
빈 주먹조차 버리고

떠나라
떠나는 것이야말로
그대의 재생을 뛰어넘어
최초의 탄생이다 떠나라


* tirol's thought

내친 김에 '교보생명 광화문 글판'에 인용되었던 시들을 찾아보고 있다. 고은 선생의 이 시는 1998년에 발췌 인용되었다.

"떠나라 낯선 곳으로 그대 하루하루의 반복으로부터"

성경에도 이 비슷한 얘기가 창세기에 등장한다.
신의 음성을 따라 무작정 길을 떠나는 아브라함의 이야기가 그것이다.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정들었던 고향, 친척들과 헤어져 낯선 곳으로 떠나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하지만 하나님의 음성을 따라 아브라함이 떠나지 않았다면,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라는 축복은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1998.02.01~1998.09.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