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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어주는 남자

겨울의 춤 - 곽재구

by tirol 2006. 11. 28.
겨울의 춤

곽재구


첫눈이 오기 전에
추억의 창문을 손질해야겠다
지난 계절 쌓인 허무와 슬픔
먼지처럼 훌훌 털어내고
삐걱이는 창틀 가장자리에
기다림의 새 못을 쳐야겠다
무의미하게 드리워진 낡은 커튼을 걷어내고
영하의 칼바람에도 스러지지 않는
작은 호롱불 하나 밝혀두어야겠다
그리고 춤을 익혀야겠다
바람에 들판의 갈대들이 서걱이듯
새들의 목소리가 숲속에 흩날리듯
낙엽 아래 작은 시냇물이 노래하듯
차갑고도 빛나는 겨울의 춤을 익혀야겠다
바라보면 세상은 아름다운 곳
뜨거운 사랑과 노동과 혁명과 감동이
함께 어울려 새 세상의 진보를 꿈꾸는 곳
끌어안으면 겨울은 오히려 따뜻한 것
한 칸 구들의 온기와 희망으로
식구들의 긴 겨울잠을 덥힐 수 있는 것
그러므로 채찍처럼 달려드는
겨울의 추억은 소중한 것
쓰리고 아프고 멍들고 얼얼한
겨울의 기다림은 아름다운 것
첫눈이 내리기 전에
추억의 창문을 열어젖혀야겠다
죽은 새소리 뒹구는 들판에서
새봄을 기다리는
초록빛 춤을 추어야겠다.


* tirol's thought

곧 첫눈이 내릴 것이다.
첫 눈이 오기 전에 난 무얼할까
추억의 창문을 손질하기도 싫고
춤을 익히기도 싫은 난 무얼할까
내 눈엔 아직도 세상이 별로 아름답게 보이질 않는데
뜨거운 사랑과 노동과 혁명과 감동이
함께 어울려 새 세상의 진보를 꿈꾸는 곳
이라는 시인의 얘기가 너무 순진하고 안일하게만 보이는데
첫 눈이 오기 전에 난 무얼할까.

덧붙여 썰렁한 얘기 하나.
지난 일요일에 청계천엘 갔다가
전태일 동상을 찾아서 광화문부터 한시간쯤 걸었다.
그 앞에서 사진을 찍고 돌아서는데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온 내 또래의 젊은 사람이
동상을 보면서 아이들에게 하는 말,

" 겨울에 추워서 자기 몸에 불 붙였다가 죽은 사람이야."

으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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