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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어주는 남자

喪家에 모인 구두들 - 유홍준

by tirol 2005. 3. 14.
喪家에 모인 구두들

유홍준


저녁 喪家에 구두들이 모인다
아무리 단정히 벗어놓아도
문상을 하고 나면 흐트러져 있는 신발들
젠장, 구두가 구두를
짓밟는 게 삶이다
밟히지 않는 건 亡者의 신발뿐이다
정리가 되지 않는 喪家의 구두들이여
저건 네 구두고
저건 네 슬리퍼야
돼지고기 삶는 마당가에
어울리지 않는 화환 몇 개 세워놓고
봉투 받아라 봉투,
화투짝처럼 배를 까뒤집는 구두들
밤 깊어 헐렁한 구두 하나 아무렇게나 꿰 신고
담장가에 가서 오줌을 누면, 보인다
北天에 새로 생긴 신발자리 별 몇 개

유홍준 시집 ‘상가에 모인 구두들’, 실천문학사


* tirol's thought

‘2005 오늘의 시’ 설문조사에 관련된 기사를 읽고 문태준 시인의 시 외에 다른 시들(문인수의 '꼭지', 박형준의 '춤', 나희덕의 '사라진 손바닥')을 찾아보았으나, 내겐 너무 어렵다. 마음에 뚜렷한 이미지를 그리기도 힘들고, 어렵게 그린 이미지 가운데서 어떤 의미나 느낌을 만들어내는 것도 힘들다. 아직 내공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라 생각한다.
그 중 유홍준의 이 시는 좀 알 것 같다. '젠장, 구두가 구두를/짓밟는 게 삶이다/밟히지 않는 건 亡者의 신발뿐이다' 같은 명료한 구절이나 '흐트러진 신발들 - 화투짝처럼 배를 까뒤집는 구두들 - 아무렇게나 꿰 신은 헐렁한 구두 - 北天에 새로 생긴 신발자리'로 이어지는 이미지의 전개는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폼으로 시를 읽지 말자. 정직하게 읽고 솔직하게 얘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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