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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농사꾼의 별에서

이상국


감자를 묻고 나서
삽등으로 구덩이를 다지면
뒷산이 꽝꽝 울리던 별

겨울은 해마다 닥나무 글거리에 몸을 다치며
짐승처럼 와서는
헛간이나 덕석가리 아래 자리를 잡았는데
천방 너머 개울은 물고기들 다친다고
두터운 얼음옷을 꺼내 입히고는
달빛 아래 먼길을 떠나고는 했다

어떤 날은 잠이 안와
입김으로 봉창 유리를 닦고 내다보면
별의 가장자리에 매달려 봄을 기다리던 마을의 어른들이
별똥이 되어 더 따뜻한 곳으로 날아가는 게 보였다

하늘에서는 다른 별도 반짝였지만
우리 별처럼 부지런한 별도 없었다

그래도 소한만 지나면 벌써 거름지게 세워놓고
아버지는 별이 빨리 돌지 않는다며
가래를 돋워대고는 했는데

그런 날 새벽 여물 끓이는 아랫목에서
지게 작대기처럼 빳빳한 자지를 주물럭거리다 나가 보면
마당엔 눈이 가득했다

나는 그 별에서 소년으로 살았다


/이상국시집, '어느농사꾼의 별에서'/

* tirol's thought

내가 아주 어린 소년이었을 때 나도 그 별에 놀러간 적이 있다.
그 별에서 사촌형들은 지게를 메고 나무를 하러 다녔고, 외삼촌들은 밤늦도록 새끼를 꼬거나 주막거리로 마실을 나갔다.새벽 여물 끓이는 사랑방의 아랫목은 잠이 깰만큼 뜨거웠는데, 내 지게 작대기는 아직 어려서 주물럭거릴만하진 못했지만, 문을 열고 나가보면 마당엔 눈이 가득했던 것도 같다. 그런 날 아침이면 외삼촌과 사촌형들은 산에 노루 덫이나 놓으러 가야겠다고 얘기하곤 했다.

# '글거리'는 '줄거리. 줄기. 그루터기'를 뜻하는 함경도 지방의 사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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