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19/013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 진은영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진은영 봄, 놀라서 뒷걸음질치다 맨발로 푸른 뱀의 머리를 밟다 슬픔 물에 불은 나무토막, 그 위로 또 비가 내린다 자본주의 형형색색의 어둠 혹은 바다 밑으로 뚫린 백만 킬로의 컴컴한 터널 ―여길 어떻게 혼자 걸어서 지나가? 문학 길을 잃고 흉가에서 잠들 때 멀리서 백열전구처럼 반짝이는 개구리 울음 시인의 독백 “어둠 속에 이 소리마저 없다면” 부러진 피리로 벽을 탕탕 치면서 혁명 눈 감을 때만 보이는 별들의 회오리 가로등 밑에서는 투명하게 보이는 잎맥의 길 시, 일부러 뜯어본 주소 불명의 아름다운 편지 너는 그곳에 살지 않는다 * tirol's thought 회의를 하다보면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가 정말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게 맞을까?' 같은 단어를 말하고 있지만.. 2019. 1. 24.
소래 포구 - 이흥섭 소래 포구 이흥섭 소래 포구에 가보지는 않았지만소래, 하고 부르면 소래가 올 것 같아요 여래를 본 적이 없지만여래, 하고 부르면이 덧없는 사바를 건널 수 있을 것처럼요 아주 작은 포구라지요내 작은 입술을 댈 만은 한가요 그곳으로 가는 철길도 남아 있다지요가슴을 대면 저 멀리서 당신의 바다가 일렁인다지요 소래, 하고 부르면 당신은 정말 오시나요여래, 하고 부르면파도치는 난바다를 잠재울 수 있는 것처럼 소래, 하고 부르면빈 배 저어저어 당신의 포구에 닿을 수 있나요 * tirol's thought 시를 읽고 나서 혼자 조용히소래, 하고 불러본다.대학 다닐 때 무작정 소래 포구에 가서낮술을 먹다가 써 본 시가 있다.그때 난 뭘 봤던가 뭘 느꼈던가소래, 하고 주문을 외면 그때 거기로 돌아가는 마법 같은 게 있다.. 2019. 1. 17.
왼쪽 가슴 아래께에 온 통증 - 장석남 왼쪽 가슴 아래께에 온 통증 장석남 죽은 꽃나무를 뽑아낸 일뿐인데 그리고 꽃나무가 있던 자리를 바라본 일뿐인데 목이 말라 사이다를 한 컵 마시고는 다시 그자리를 바라본 일뿐인데 잘못 꾼 꿈이 있었나? 인젠 꽃이름도 잘 생각나지 않는 잔상들 지나가는 바람이 잠시 손금을 펴보던 모습이었을 뿐인데 인제는 다시 안 올 길이었긴 하여도 그런 길이었긴 하여도 이런 날은 아픔이 낫는 것도 섭섭하겠네 * tirol's thought 나이가 들며 새로 생긴 불편한 것 중 하나는 발 뒤꿈치의 각질. 양말을 신을 때나 이불을 덮을 때 직물에 각질이 긁히는 느낌이 너무 안좋다.얼마 전에는 인터넷으로 발각질 제거제도 샀는데 생각보다 효과는 그다지...그런 각질로 고민하다가 이 시를 읽으니 마치 무슨 애기 뒤꿈치를 보는 느낌이랄.. 2019. 1.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