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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어주는 남자

바지씨 - 이진우

by tirol 2004. 8. 11.
바지씨

이진우


가슴살이 흘러
허리에서 잠깐 멈춘 것뿐인데
십년 넘게 입는 바지씨가
냉정하게 허리를 조이신다

과식도 몰랐고 탐식도 몰랐다
다이어트도 모르고 조깅도 몰랐다
술을 마실 때 안주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조금 먹고 조금 버리고 조금 싸고
조금 벌고 조금 쓰고
조금조금 조심하며 살았다

결혼하고 아이 둘 낳고
학부형이 된 세월 동안
바지는 늘 28인치

무거운 것은 아래로 흐르는 법
가슴살이 허리를 지나고 허벅지를 지나
땅에 닿고 땅 속까지 파고드는 날이 오면 알겠지
내 욕심의 무게

바지씨,
사정도 없이 허리를 조르신다

* source : http://www.winterindia.co.kr

* tirol's thought

한번 불어난 살은 좀체로 빠질 줄을 모른다.
늘어난 뱃살을 보고 손짓하는 사람들에게
'가슴살이 흘러내려' 그렇게 된 거라고 농담을 건네기도 해보지만
(시인도 나같은 농담을, 아니 내가 시인과 같은 농담을 하다니, 신기허다)
냉정한 바지씨가 허리를 조일때마다
나또한 솔직히 인정할 수 밖에 없다.
'내 욕심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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