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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어주는 남자

춘추 - 김광규

by tirol 2019. 6. 22.

춘추 (春秋) 

 

김광규

 

 

창밖에서 산수유 꽃 피는 소리

 

한 줄 쓴 다음

들린다고 할까 말까 망설이며

병술년 봄을 보냈다

힐끗 들여다본 아내는

허튼소리 말라는

눈치였다

물난리에 온 나라 시달리고

한 달 가까이 열대야 지새며 기나긴

여름 보내고 어느새

가을이 깊어갈 무렵

겨우 한 줄 더 보탰다

 

뒤뜰에서 후박나무 잎 지는 소리

 

<김광규, 시간의 부드러운 손, 문학과지성사, 2007>

 

* tirol's thought

 

3연 13행의 시 속에

봄부터 가을까지 세개의 계절이 들어있다.

망설임과 아내의 눈치와 물난리와 열대야를 거쳐

봄에서 가을로

꽃 피는 소리에서 잎 지는 소리로

잎 지는 소리와 다시 꽃피는 소리

사이에는 무엇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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