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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어주는 남자

집 - 김명인

by tirol 2006. 3. 30.


김명인

새집들에 둘러싸이면서
하루가 다르게 내 사는 집이 낡아간다
이태 전 태풍에는 기와 몇 장 이 빠지더니
작년 겨울 허리 꺾인 안테나
아직도 굴뚝에 매달린 채다
자주자주 이사해야 한재산 불어난다고
낯익히던 이웃들 하나 둘
아파트며 빌라로 죄다 떠나갔지만
이십 년도 넘게 나는
언덕길 막바지 이 집을 버텨왔다
지상의 집이란
빈부에 젖어 살이 우는 동안만 집인 것을
집을 치장하거나 수리하는
그 쏠쏠한 재미조차 접어버리고서도
먼 여행 중에는 집의 안부가 궁금해져
수도 없이 전화를 넣거나 일정을 앞당기곤 했다
언젠가는 또 비워주고 떠날
허름한 집 한 채
아이들 끌고 이 문간 저 문간 기웃대면서
안채의 불빛 실루엣에도 축축해지던
시퍼런 가장의
뻐꾸기 둥지 뒤지던 세월도 있었다


* tirol's thought

하루가 다르게 나를 둘러싸며 올라오는 새 집들과
'자주자주 이사해야 한재산 불어난다고' 떠나는 이웃들을 보면서
'지상의 집이란 / 빈부에 젖어 살이 우는 동안만 집'이며
'언젠가는 또 비워주고 떠날' 집이라는 사실을 알고있으면서도
끊임없이 그들과 나의 집을 비교하고, 낡은 내 집을 원망하며,
그들보다 뒤처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불안해 하는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는 내가 참으로 착찹하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걸 알면서
감사하는 마음없이는 평안함도 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 말이다.